“그 사람 참 착하고 성실하지.” 회사에서 이런 평가를 들을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묘하게 시큰했습니다. 실제의 나는 피곤하고 불만도 많은데, 왜 사람들은 나를 늘 ‘괜찮은 사람’으로만 보는 걸까. 그건 내가 너무 오랫동안 ‘회사용 얼굴’을 써왔기 때문입니다. 업무 성과를 위해, 관계의 갈등을 줄이기 위해, 혹은 조직의 공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만들어낸 가면은 때론 진짜 나를 지우는 도구가 됩니다. 이 글은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겪는 ‘가면 착용의 피로’를 돌아보며, 어떻게 하면 감정 노동 없이도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지를 ‘가면 벗는 연습 기록’이라는 실제적 시선으로 풀어냈습니다. 나의 존재감을 조직에 맞춰 축소하는 게 아니라, 나다움을 지키면서도 유연하게 일할 수 있는 방법. 그것은 솔직함이 아니라, 훈련된 정직함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나는 왜 ‘회사용 나’를 연기하게 되었을까
‘나답게 일한다’는 말은 생각보다 어려운 명제입니다. 특히 수직적 문화가 강한 조직, 비공식적인 규칙이 많은 직장일수록 개인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상황에 맞는 표정을 연기합니다. 처음 입사했을 때 나는 회사 사람들에게 최대한 무난하게 보이기 위해 늘 웃는 얼굴을 유지했고, 어떤 부당한 일도 참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렇게 하면 인정받을 줄 알았고, 적어도 갈등은 피할 수 있을 거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자 나를 점점 피곤하게 만들었습니다. 내 감정은 웃고 있지 않은데, 얼굴만 웃고 있는 상태가 반복되면서 ‘회사용 감정’과 ‘실제 감정’의 간극이 커졌습니다. 결국 나는 진짜 감정에 둔감해졌고, 혼자 있을 땐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에 가까워졌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정서 고갈’이라 부릅니다. 감정을 억제하거나 연기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자기 정체성은 흐릿해지고, 타인 중심의 감정 반응만 남습니다. 회사에서 ‘가면을 쓴 나’는 처음엔 방어기제로 작동했지만, 나중엔 내 감정과 욕구를 무시하는 억압 기제로 변해갔습니다. 그 누구도 나에게 그렇게 하라고 지시한 적 없지만, 나는 스스로 조직에 맞춰진 ‘이상적인 직원’이 되기 위해 자기 검열과 감정 왜곡을 내면화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 연기가 성공할수록 ‘진짜 나’는 조직에서 점점 사라졌다는 점입니다.
가면이 벗겨질 때 생기는 감정, 두려움인가 해방인가
가면을 벗기로 결심한 날은 특별한 사건이 있었다기보다, 내가 더 이상 웃을 수 없다는 걸 인식한 순간이었습니다. 팀 회의 중 상사가 무심하게 던진 말에 전처럼 반응하지 못했고, 그냥 가만히 있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애써 웃었겠지만, 그날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신기하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동료 한 명이 회의 끝나고 내게 와서 말했습니다. “오늘 좀 달라 보이셨어요. 뭐가 힘든 건지, 그냥 느껴졌어요.” 그 말은 나를 낯설게 만들었습니다. 그간 쌓아온 ‘괜찮은 사람’ 이미지를 유지하지 않아도 관계가 완전히 무너지진 않는다는 경험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나는 아주 조금씩 가면을 벗는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가장 먼저 한 건, ‘아니요’라고 말하는 훈련이었습니다. 예전엔 무조건 “네, 알겠습니다”로 반응했던 업무 요청에, 가용 시간을 고려해서 “이 일정은 어렵습니다. 다음 주는 가능합니다”라고 조율하기 위해 시작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팀원들과의 신뢰는 무너지지 않았고, 오히려 나의 경계가 명확해졌습니다. 가면을 벗는 일은 생각보다 큰 반항이 아닙니다. 오히려 작은 정직함의 반복입니다. 솔직하되 예의 있게, 감정을 억누르지 않되 폭발하지 않게, 그 균형을 찾기 위한 말하기 훈련입니다. 이 과정에서 느낀 가장 큰 변화는, 타인보다 나 자신을 더 많이 신경 쓰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이 말을 하면 어떻게 보일까’보다 ‘이 말을 하지 않으면 내가 얼마나 힘들까’를 기준으로 삼게 시작했을 때, 나는 처음으로 나에게 충실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직장에서 ‘진짜 나’를 회복하는 말하기 훈련
가면을 벗는다고 해서 곧바로 날것의 감정을 드러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중요한 건 내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문장을 준비해 두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화가 나는 상황에서 “화가 났어요”라고 직접 말하기 어려울 땐, “지금 이 일은 제게 불편하게 느껴집니다”처럼 ‘감정 과 맥락’을 함께 말하는 구조가 유용합니다. 훈련되지 않은 솔직함은 때때로 오해를 낳지만, 구조화된 감정 언어는 상대에게 ‘이해할 수 있는 진심’을 전달합니다. 이런 표현 훈련은 평소 작은 상황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그건 제 생각과 조금 다릅니다. 저는 그 방식보다는 이런 쪽을 선호합니다. 조금 시간을 갖고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이런 말들은 직장 내에서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는 동시에, 관계를 해치지 않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즉, 가면을 벗는다는 건 감정만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말의 주인이 되는 것’을 뜻합니다. 나를 표현하는 훈련은 곧 존재감을 회복하는 훈련이며, 회사라는 공동체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꼭 필요한 감정 자기 보호 루틴입니다. 또한, ‘가면을 벗는 언어’를 익히면, 타인의 말에 휘둘리는 일도 줄어듭니다. 내가 중심을 잡고 있을 때, 누군가의 농담이나 무례한 말이 나를 흔들 수 없습니다. 나의 감정을 존중하는 태도는, 타인의 감정에도 경계를 세울 수 있는 힘을 줍니다. 직장에서 가면 없이 일한다는 건, 결국 내 감정과 상처를 들여다볼 수 있는 용기를 만드는 일입니다.
가면을 벗는 삶은, 더 이상 연기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
가면을 쓰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공격받지 않기 위해, 버림받지 않기 위해, 혹은 소속감을 유지하기 위해 가면을 선택합니다. 하지만 오랜 가면은 얼굴에 들러붙고, 언젠가부터 그것이 진짜 나인 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감정의 주체가 아닌 감정의 소비자가 됩니다. 회사에서 ‘연기’하지 않아도 되는 삶, 그것이 얼마나 큰 회복인지 나는 이제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지금도 모든 상황에서 가면 없이 말하진 못합니다. 여전히 망설이고, 돌려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엔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나의 경계를 알리고,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완벽한 솔직함이 아니라, 훈련된 자기표현의 결과입니다. 가면을 벗는 연습은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동시에 나를 단단하게 만듭니다.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가면이 어느 순간 삶을 갉아먹고 있다면, 이제는 가면을 벗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가장 좋은 훈련은 작은 감정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무례한 말을 무례하다고 느끼는 것, 지친 날엔 지쳤다고 인정하는 것, 거절할 때 “죄송하지만”보다 “지금은 어렵습니다”를 먼저 말해보는 것. 그런 연습이 모이면, 회사라는 공간 안에서도 진짜 나로 존재할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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