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보다 더 힘든 건 “내 감정 관리”였다
직장생활을 10년 넘게 하다 보면, 일이 힘든 게 아니라 사람 사이에서 소모되는 감정이 더 괴롭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다. 누구보다 일찍 출근해서 회의 준비를 하고도 고맙다는 말 하나 없는 상사, 내 아이디어를 그대로 가져다 쓰고도 나 몰라라 하는 동료, 사소한 말에 기분 상했다고 뒤에서 사람을 모는 인간들. 업무는 어찌어찌 익숙해지지만, 감정은 매일 새로 멍이 들었다.
특히 감정을 숨기고 웃어야 하는 순간 이 반복될 때 가장 크게 닳는다. 모욕적인 말을 듣고도 웃으며 “괜찮습니다”라고 말해야 하고, 억울한 상황에서도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아야 한다. 그게 사회생활이고, 어른의 역할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지만, 어느 날 갑자기 아침에 눈이 떠지지 않는다.
오늘도 그 얼굴들 봐야 하나는 생각만으로도 체력이 소진되는 느낌. 이것이 감정노동 후유증의 첫 신호였다.
나는 어느 날 스스로 질문했다.
도대체 왜 나는 이렇게까지 참고 있어야 하지
그날부터 감정노동 탈출 선언을 준비하기 위해 시작했다.
감정노동 탈출의 첫걸음: ‘내 감정’을 인정하는 연습
처음엔 나도 몰랐다. 내가 지친 이유가 업무량 때문이 아니라, 감정을 억누르는 습관 때문이라는 걸.
하루 종일 웃고, 맞장구치고, 상대 기분에 맞춰 말하고… 퇴근길엔 말 한마디 섞기조차 싫었다. 집에 오면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고,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는 드라마도 피하게 되었다.
나는 감정을 돌보는 방식으로 3가지 루틴을 만들었다.
하나는 감정의 문장화, 둘째는 감정의 공간화, 셋째는 감정의 리셋이다.
- 감정의 문장화: 앞서 말한 감정 기록 외에도, 하루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을 나만의 일기장에 적는다. 그 말이 기분 좋았든 나빴든 간에, 그것이 내 하루를 움직인 방아쇠였다. 그리고 왜 그런 반응이 나왔는지를 짧게 적는다. 예를 들어 “상사의 ‘그건 왜 그렇게 했어?’라는 말이 비난처럼 들려 위축되었다. 나는 비판에 예민한 편이다.” 문장으로 정리된 감정은 더 이상 정체불명의 불쾌감이 아니다.
- 감정의 공간화: 감정을 묻는 공간과 감정을 푸는 공간을 다르게 설정한다. 예컨대 회사 책상 위는 감정을 숨기는 공간, 집 안 작은 조명 아래는 감정을 푸는 공간이다. 나는 집에 돌아와 조명을 켜면, 오늘 감정의 버튼을 OFF 해도 되는 곳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인식한다.
- 감정의 리셋: 주말에 2시간씩 감정해독 시간을 갖는다. 스마트폰을 끄고, 산책하면서 듣는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고정해 둔다. 특정 음악을 들으면 감정이 안정되는 조건반사를 유도하는 것이다. 음악과 걷기가 뇌의 긴장을 풀어줄 뿐 아니라, 그 시간을 정기적으로 반복하면 감정 회복력이 꾸준히 강화된다.
나는 이런 반복된 훈련을 통해 감정 해소의 시작점을 만들었다.
감정을 참는 것에서 인식 하는 것으로 바꾼 순간, 나는 처음으로 내 편이 되어주기 시작했다.
행동 루틴 바꾸기: 탈출은 감정이 아니라 “패턴”을 바꾸는 일
감정노동에서 벗어나기 위해 두 번째로 바꾼 건 출근 루틴이었다.
예전엔 업무 시작 5분 전 겨우 회사에 도착했다
이제는 도착 전 15분을 확보해, 아침 햇빛을 맞으며 산책하고, 마음챙김 음악을 듣는다.
처음에는 억지로라도 “오늘은 내 감정을 존중한다”는 한 문장을 중얼거렸다.
다음으로 바꾼 건 대화 방식이다.
누군가 기분 나쁜 말을 해도 괜찮다고 넘기기보다,
그 말은 조금 부담스럽네요.
그렇게 들리면 저는 좀 불편해요.
이런 식으로 아주 부드럽지만 경계가 느껴지는 말을 연습했다.
처음엔 손이 떨렸지만, 몇 번 말해보니 놀랍게도 상대가 바뀌기 시작했다.
상대는 나를 예민한 사람 이 아니라, 자기 감정을 지키는 사람으로 인식하게 된다.
또 하나 중요한 변화는 에너지 소모 대화 줄이기였다.
회사 내에서 굳이 대화를 늘리지 않아도 되는 사람과는 단답형 응대, 고개 인사, 이모티콘 정도로만 소통하며 거리를 뒀다.
감정노동의 절반은 “하지 않아도 될 관계에 너무 많이 반응하는 습관” 때문이다.
이 습관을 끊자 퇴근 후 피로가 눈에 띄게 줄었다.
감정노동을 멈춘 뒤 내 안에 찾아온 변화
내가 감정노동을 줄이고 나서 가장 크게 달라진 건, 퇴근 후 ‘내 감정’이 살아 있다는 느낌이었다.
예전엔 모든 에너지를 회사에 두고 와서, 집에서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주말이면 그냥 잠만 자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퇴근 후 글을 쓰고, 산책하고, 차를 끓여 마시며 “내가 어떤 기분인지”를 느끼는 시간이 늘었다.
감정을 않으니, 기쁨도 회복되었다.
나는 회사의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라,
나를 위한 삶을 훈련 중인 사람이라는 자각이 생겼다.
회사에 충성하지 않아도, 눈치를 보지 않아도,
나는 여전히 일을 잘하고 있고,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도 조금씩 자라났다.
감정노동 탈출은 거창한 변화가 아니다.
‘그 말, 기분 나빴어’라고 스스로 인정하고,
내 감정의 편이 되어주는 작은 훈련에서 시작된다.
오늘도 당신이 회사에서 무례한 말에 속으로 삼켰다면,
이 글이 당신에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은 참고 견디는 기계가 아니라, 감정이 살아 있는 사람입니다.
회사는 변하지 않았지만 나는 더 이상 나를 버리지 않는다. “참아야 한다” 대신 “나를 지켜야 한다”가 삶의 원칙이 되었다. 당신도
오늘 한 문장으로 감정노동 탈출을 시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