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과잉 책임감에서 벗어나 ‘내 몫’과 ‘남의 몫’ 구분하기”
“이 일은 내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요.” “제가 아니면 누가 챙기겠어요.” 직장에서 이런 말을 달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과잉 책임감’에 갇힌 이들입니다. 책임감은 분명 중요한 직무 역량이지만, 그 선을 넘는 순간 감정 노동과 탈진의 원인이 됩니다. 특히 팀 안에서 다른 사람의 일까지 나서서 처리하거나, 누군가의 실수까지 대신 수습하는 태도는 본인의 업무 역량을 보이기보단 감정 에너지를 소진하는 지름길이 됩니다. 문제는 스스로 그 선을 인식하지 못한 채 ‘이 정도는 당연히 해야지’라는 강박 속에서 자신을 희생한다는 점입니다. 이 글은 ‘내가 해야 할 일’과 ‘내가 하지 않아도 될 일’을 명확히 구분하고, 감정 소모 없는 책임감을 유지할 수 있는 심리적 경계 설정법을 제시하려 합니다. 과잉 책임감에서 벗어나는 순간, 일도 감정도 훨씬 가벼워질 수 있습니다.
책임감이라는 이름의 ‘감정 중독’
과잉 책임감은 단순히 일을 열심히 하려는 성향이 아니라, 감정을 통해 자신을 증명하려는 무의식적 패턴입니다. “내가 해결해야 한다”, “누군가가 실수하면 나도 책임이 있다”는 생각은 겉으로 보기엔 성실하고 희생적인 태도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자신의 경계가 모호해진 상태입니다. 이들은 타인의 피드백이나 반응에 예민하고, 누군가 힘들어 보이면 그것이 곧 자신의 과제가 된다고 느끼 곤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감정 중독’이 반복되면, 실제 일보다 감정 조절과 관계 유지에 더 많은 에너지를 쓰게 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의 잘못을 보고도 지적하지 못하고 대신 처리하거나, 동료의 미완성 업무를 대신 마무리하며 “다음엔 내가 조심해야지”라고 다짐하는 식입니다. 이는 직장 내 감정 노동을 자초하는 구조이며, 결국 심리적 고립감이나 탈진으로 이어집니다. 책임감은 태도이자 기술입니다. 그 기술은 ‘적정한 선’을 세울 줄 아는 데서 완성됩니다.
책임감과 경계의 기준: ‘나의 몫’ 다시 정리하기
과잉 책임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책임의 범위를 재정의하는 작업이 필수적입니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자기 일과 타인의 일을 시간과 행동 단위로 구분해 보는 것입니다. 예컨대, A 업무가 팀 프로젝트라면 내가 맡은 부분은 어디까지이며, 그 이외는 누구의 책임인지 명시적으로 나누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이건 oo임이 해주셔야 가능한 부분이에요”와 같은 역할 중심의 언어 습관이 도움이 됩니다. 또한 감정적으로 타인의 피로를 대신 감당하는 경우, “그건 제가 도와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에요”라는 식의 정중한 경계 표현을 익혀야 합니다.
책임의 재정의에는 또 하나 중요한 기준이 있습니다. 바로 ‘결과’가 아니라 ‘영역’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종종 어떤 일이 실패하거나 결과가 좋지 않으면, 전 과정에 관여하지 않았음에도 “내가 더 챙겼어야 했나?”라는 자책이 따라옵니다. 그러나 감정 건강을 지키기 위해선 결과가 아닌 내가 맡은 행동의 정당성을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했는가?’라는 질문은 자책과 강박에서 벗어나는 핵심 열쇠입니다. 책임의 영역이 명확해질수록, 감정의 회복력도 강해집니다.
타인의 몫을 대신하는 ‘선의’가 오히려 독이 될 때
과잉 책임감의 가장 흔한 형태는 ‘도움을 빙자한 개입’입니다. 동료가 실수할까 봐 대신 확인하고, 후배가 놓칠까 봐 미리 처리하는 일은 순간적으로 팀을 돕는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상대방의 성장 기회를 박탈하고, 자신에겐 감정 피로만 남기는 악순환을 만듭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선의가 반복될수록 주변 사람들은 점점 의존하게 되고, 책임의 분배가 왜곡된다는 점입니다. 결국 팀 전체가 ‘일은 혼자 다 한다’는 구조로 굳어지며, 과잉 책임자는 조용한 희생자이자 불만의 중심인물이 되어버립니다.
이러한 감정 노동 루틴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방임이 아니라 존중’이라는 시선 전환이 필요합니다. 동료가 실수하더라도 그것은 그 사람의 몫이며, 내가 미리 개입하거나 수습하는 것은 배려가 아니라 경계를 넘는 간섭일 수 있습니다. 특히 후배나 신입 직원에게 너무 많은 피드백을 주는 습관은, 도와준다는 명목 아래 상대의 업무 자율성을 침해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내가 대신 해주는 것이 아닌,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 진짜 책임 있는 태도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감정을 쓰는 대신 신뢰를 주는 것, 그것이 선한 거리두기입니다.
감정 에너지 보호 루틴 만들기
마지막으로 과잉 책임감에서 벗어나기 위한 핵심 전략은 감정 에너지 관리 루틴을 만드는 것입니다. 일과 중 감정이 소모되는 상황은 피할 수 없지만, 그 피로를 해소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은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하루에 단 10분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감정 정리 시간’을 고정하거나, 퇴근 전 3분 동안 “오늘 내가 해야 할 몫을 다했는가?”를 스스로 점검하는 셀프 상기를 실행하는 것입니다.
또한 주변에서 책임을 넘기려는 신호가 보일 때, 반사적으로 ‘내가 할게요’라고 말하지 않고 ‘잠시만요, 이건 누구 업무였죠?’라고 되묻는 습관을 들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이 한 문장이 감정 소비를 절반 이상 줄여줍니다. 가장 중요한 건, 모든 것을 책임지지 않아도 나는 충분히 좋은 사람이라는 자기 확신을 꾸준히 쌓는 것입니다. 감정 노동을 줄인다고 해서 게으른 것도, 차가운 것도 아닙니다. 나의 몫에만 충실하면서도 따뜻할 수 있습니다. 책임은 내 감정을 망가뜨리는 도구가 아닌, 건강한 거리에서 펼치는 능력입니다. 이제는 ‘열심히’보다 ‘건강하게’ 일할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