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말보다 감정이 먼저 움츠러드는 사람에게 내 감정의 중심 되찾기
직장에서, 회의에서, 또는 아주 사소한 대화 중에서도 “이건 내 생각인데”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기가 망설여질 때가 있습니다. 머릿속에선 분명하게 정리된 의견인데도, 말하려는 순간 가슴이 뛰고, 혹시 불편하게 받아들여지진 않을까 걱정됩니다. 그렇게 우리는 ‘자기 의견을 표현하는 일’ 자체가 두려워집니다. 이는 단순한 말버릇이 아니라, 감정 중심의 무게 중심이 흔들린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자기 의견을 말하지 못하는 사람의 내면 구조를 해부하고, 왜 그 감정이 막히는지, 어떻게 감정의 중심을 회복해야 하는지를 단계별로 풀어냅니다. 직장 내 커뮤니케이션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심리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나 라는 사람의 감정을 존중하는 연습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자기표현이 어려운 사람의 심리적 뿌리 감정 허락받기
자기 의견을 내는 데 주저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릴 적부터 감정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제한을 많이 받았습니다. “괜히 분위기 흐리지 마”, “그건 네가 틀린 거야”, “말대꾸 하지 마” 같은 말을 반복해서 들으며 자란 환경은, 감정 표현보다 ‘적응’에 더 많은 힘을 쓰게 만듭니다. 이렇게 길러진 사람은 사회에 나와서도 자기감정보다 타인의 감정을 먼저 고려하는 반사적 태도를 갖습니다. 그래서 생각은 많지만, 말은 적어지는 것입니다.
특히 조직 문화 속에서는 ‘다른 생각을 말하는 사람’이 귀찮은 존재로 치부되기 쉽습니다. 팀 내에서 이미 정해진 흐름이 있거나, 위계 관계가 강한 환경에서는 반론이나 제안조차 ‘튀는 말’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직장인들이 말하기 전부터 스스로를 검열합니다. “이걸 굳이 내가 말해야 하나?”, “괜히 내 입장만 이상해지는 거 아냐?”, “말한 뒤에 책임까지 져야 하지 않을까?” 이런 내부 질문이 말 앞에 서게 됩니다. 이건 감정의 보호 기제가 아니라 감정의 억제 루틴입니다.
결과적으로 감정 표현의 회로가 끊기고, 나의 감정은 점점 말의 언어로 번역되지 않는 상태로 남습니다. 이는 말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 ‘내가 뭔가를 주장해도 괜찮은 사람인가’라는 존재적 의문으로까지 확장됩니다. 자기 의견을 표현하지 못하는 문제는 곧 자기 존재의 감정적 무게 중심이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인 셈입니다.
의견을 말하지 않는 습관이 초래하는 감정 피로
말하지 않는 사람은 갈등을 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대가로 감정 피로를 떠안습니다. 의사 표현을 억누른 채 협의에 참여하거나 팀 결정에 따르는 상황이 반복되면, 내부에는 미세한 긴장이 쌓입니다. “이게 아닌데”, “내가 이렇게까지 맞춰야 하나?”라는 감정이 말로 표현되지 못한 채 쌓이면, 결국 자기 소외감으로 이어집니다.
의견을 말하지 않으면서도, 우리는 타인의 반응에는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회의에서 누군가의 제안이 채택될 때, 그 안에 내가 생각했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면 내 생각을 인정받지 못했다는 감정이 슬그머니 올라옵니다. 말하지 않았으니 탓할 수 없고, 인정받지 못했으니 서운해집니다. 이 이중 감정은 정체성 피로를 만듭니다. 무언가를 느끼지만 말하지 않고,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도 마음은 영향을 받습니다. 이게 반복되면, 우리는 점점 자기 생각에 확신을 잃게 됩니다.
나중에는 ‘말할 필요도 없다’는 태도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생각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표현을 줄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몸에 남습니다. 감정 억제로 인한 잔존 피로는 두통, 위장장애, 피로감, 의욕 저하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자기 의견을 말하지 못하는 것이 단지 소통의 문제가 아닌 이유입니다. 그것은 감정과 몸을 함께 피 만드는 심리-신체 복합 스트레스입니다.
내 감정의 중심 되찾기 감정 복원 3단계 루틴
의견을 말하는 용기를 기르기 위해선 먼저 감정에 대한 자기 허락이 선행돼야 합니다. 첫 단계는 느낌 기록 루틴이다. 하루에 한 번, 어떤 상황에서 무슨 감정을 느꼈는지를 기록합니다. 단순히 짜증 났다, 답답했다가 아니라, 그 상황에서 왜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 말로 표현하자면 어떤 문장이었을지를 써보는 것입니다. “이럴 땐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는 문장을 써보는 훈련은, 감정을 언어화하는 근육을 키웁니다.
두 번째는 작은 말하기 연습입니다. 동료와 일대일 대화에서 의견을 말하는 기회를 의도적으로 만듭니다. 예를 들어 “저는 이 일정보다는 다음 주가 더 효율적일 것 같아요”처럼, 작은 제안이라도 자기감정과 연결된 의견을 꺼내는 연습을 반복합니다. 이때 중요한 건, 상대의 반응에 흔들리지 않는 ‘내 의견은 그 자체로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는 내면의 확신 회로를 만드는 것이다.
세 번째는 자기 의견 방어 훈련이다. 의견을 냈을 때 예상되는 반론에 대해 미리 시뮬레이션해 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그건 좀 무리한 일정 같은데요”라는 말이 돌아올 경우, “그 점을 고려해 대안도 마련해 뒀습니다”처럼 이어가는 연습입니다. 이 과정은 말하기 자체에 대한 안정감을 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내 감정을 끝까지 지켜내는 연습입니다.
이 세 단계를 반복하다 보면, 감정은 말로 옮겨지고, 의견은 의사소통의 장으로 나올 준비가 됩니다. 회의에서 말문이 막히는 게 아니라, 감정의 리듬을 타고 입이 움직이기 위해 시작하는 변화가 생깁니다.
말보다 더 중요한 것 감정의 주도권
결국 의견을 말하는 두려움은 말하기 자체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감정의 주도권을 상실한 상태입니다. 누군가에게 맞추고, 평가받는 관계에 길들수록 우리는 내 감정을 내 의지대로 꺼내지 못합니다. 그 결과, 말은 점점 줄어들고 감정은 점점 무거워집니다. 감정이 움츠러들면 말도 움츠러듭니다. 감정의 리듬을 회복하는 일이 말의 회복보다 우선입니다.
자기 의견을 말한다는 건 단순히 말을 꺼낸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 감정은 여기에 있고, 나는 이 감정을 표현할 권리가 있다”는 존재 선언입니다. 이 선언이 반복될수록 우리는 비로소 타인의 눈치를 덜 보게 되고, 자기 목소리에 확신이 붙습니다. 그 확신은 관계를 바꾸고, 조직 안에서의 자율성을 확장합니다.
말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있는 내가 되는 것. 그것이 감정의 중심을 회복하는 시작입니다. 말은 감정의 탈출구가 아니라, 감정이 머물 수 있는 집입니다. 그 집을 다시 짓기 위해선 나의 감정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부터 다시 일으켜야 합니다. 오늘 내 감정에 다시 말을 걸어보는 것입니다. “괜찮아, 너는 말할 자격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