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감정 노동 탈출기

조직 내 ‘말 잘하는 사람’ 앞에서 위축될 때, 나의 리듬 지키는 법

parangi-news 2025. 7. 16. 23:02

회의 자리에서 누군가가 유창하게 말을 이어가고, 팀장은 연신 고개를 끄덕입니다. 나는 내 차례가 올까 긴장하며 손바닥에 땀이 맺히고, 머릿속이 하얘집니다. ‘나는 왜 저렇게 말하지 못할까’라는 생각이 회의가 끝난 후에도 하루 종일 머릿속에 맴돕니다. 직장 생활을 하며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하는 이 감정은 단순한 비교 심리 그 이상입니다. ‘말 잘하는 사람’ 앞에서 위축되는 건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리듬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말을 잘하는 타인의 페이스에 휘둘리지 않고, 나만의 감정과 표현의 리듬을 지키는 현실적이고 심리적인 전략을 다룹니다. 목소리의 크기가 존재감을 대변하지 않으며, 자신 있게 말하는 법은 타인을 모방해서가 아니라 자기 리듬을 회복하는 훈련에서 출발합니다.

조직 내 나의 리듬 지키는 법

말 잘하는 사람 앞에서 무너지는 건 ‘자신감’이 아니라 ‘속도감’


회사 회의나 피드백 자리에서 내가 느끼는 위축감은 대개 ‘말을 못 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내 속도보다 빠르게 생각하고, 논리적으로 전달하는 상대의 스타일에 나의 리듬이 무너져서 생기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말의 템포와 구조가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빠르고 강하게, 어떤 사람은 느리지만 설득력 있게 말합니다. 문제는 조직 내에서 빠르고 논리적인 말이 ‘능력’으로 평가받는 구조에서 비롯됩니다. 나 역시 어느 회의에서였습니다. 한 팀원이 차분하면서도 강단 있게 자기 의견을 제시하자 모두가 그 말을 기준 삼아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내 차례가 왔을 땐 이미 분위기가 정리되어 있었고, 내 의견은 그저 덧붙임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날 이후 나는 중요한 회의에 들어갈수록 말을 줄이기 위해 시작했습니다. 생각은 있었지만, ‘저 사람처럼 말하지 못하면 말하는 게 무의미하다’는 무력감이 깊게 자리 잡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문제는 말재주가 아니라, 내 리듬을 지키지 못한 탓이었습니다. 비교는 속도의 차이를 무시합니다. 나의 사고 속도와 말하는 호흡, 정리하는 방식은 타인과 다릅니다. 그런데 그 다른 리듬을 부끄러워하고 틀린 것처럼 인식하게 되면, 결국 나는 말 자체를 포기하게 됩니다. 그것이 반복되면 ‘나는 말이 느린 사람’, ‘나는 발표를 못 하는 사람’이라는 자기 낙인이 고착됩니다. 말은 감정의 도구이고, 리듬은 자존감의 토대입니다.

 

타인의 말에 휘둘리지 않는 ‘심리적 수화기’의 원리

심리학에서 말 잘하는 사람은 대개 ‘내면화된 언어 훈련’이 잘된 사람으로 봅니다. 그들은 이미 자신이 어떤 주제에 대해 어떤 언어를 쓰는지 알고 있고, 익숙한 단어를 정해진 구조로 연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즉, 말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반복 훈련의 결과물입니다. 반대로, 내가 말에 위축되는 이유는 타인의 언어가 내 사고의 공간을 먼저 점령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태에선 두 가지 현상이 발생합니다. 첫째는 내용보다 분위기에 집중하는 과부하입니다. ‘지금 어떤 표정으로 말해야 하지?’, ‘말이 너무 짧지 않을까?’, ‘이걸 말해도 될까?’ 같은 생각이 실질적인 전달보다 우선합니다. 둘째는 스스로를 중계자처럼 관찰하는 메타 인지 오류입니다. 즉, 나는 지금 말을 하면서도 동시에 ‘나는 지금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스스로 되뇝니다. 이 상태에서는 어떤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습니다.
이럴 때 효과적인 방법은 일종의 ‘심리적 수화기 전략’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말을 들을 때 내 머릿속 수화기를 잠시 내려놓는 것, 즉 상대의 스타일에 몰입하지 않고, 내 내면 언어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타인의 언어를 내 언어로 해석하고 재조립하려 하지 말고, 그저 ‘정보’로 받아들이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저 사람은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구나’ 정도로만 듣고, 나의 리듬은 그대로 유지해야 합니다. 타인의 언어가 내 생각의 호흡을 침범하게 두지 않는 것, 그것이 자기 리듬 유지의 핵심입니다.

 

말이 꼬이지 않게 만드는 ‘사전 리듬 설정법’


회의나 발표를 앞두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내용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리듬으로 말하고 싶은지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속도를 너무 의식하지 말고, 자신에게 익숙한 말의 패턴과 구조를 메모해 봅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방식입니다.
문장 길이 제한하기: 문장을 한 줄 안에 끝냅니다. 길어지면 불안도 커집니다.
첫 단어를 정해두기: ‘저는’, ‘제 생각엔’, ‘보완하자면’ 등의 시작 문구를 미리 정해 둡니다.
간단한 구조 반복: 결론 → 이유 → 예시 문제 → 원인 → 제안 등의 순서를 매번 유지합니다.
이 방식은 ‘말을 잘한다’는 인상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당황하지 않고 말할 수 있는 리듬을 고정하는 것에 초점이 있습니다. 말이 꼬이는 건 내용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리듬이 불안정할 때입니다. 특히 중요한 회의에서는 머릿속에서 한 문장을 두 번 반복한 후 입 밖으로 꺼내는 ‘이중 리허설’ 방식도 효과적입니다. 속도는 느리지만 안정감 있는 말은 신뢰감을 줍니다. 즉, 잘 말하려 하지 말고 편안하게 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선입니다.
또한 회의가 끝난 뒤에는 반드시 자기 피드백 노트를 작성하는 것도 좋습니다. 오늘 어떤 말은 잘 나왔고, 어떤 부분에서 망설였는지 기록해 두면, 다음 회의에서 유사한 상황에 대비할 수 있습니다. 말의 리듬은 단지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의 온도를 낮추고 집중을 높이는 루틴이기 때문에, 훈련이 누적될수록 위축은 줄고 표현은 늘어납니다.

 

말은 능력이 아니라 자기 확신의 반복이다


결국, 말 잘하는 사람 앞에서 위축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나의 언어에 대한 신뢰 부족입니다. 그 사람이 잘났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나의 말하기 방식을 불완전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말은 완벽을 요구하는 기술이 아니라, 자신에게 익숙한 리듬을 반복하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이 리듬은 속도가 아닌 신뢰로 완성됩니다.
“나도 한마디 해야 할까?”, “이 말이 의미 있을까?” 같은 질문은 자기 검열의 시작점입니다. 이때 자신에게 되묻자. “지금 이 말을 하지 않으면, 내가 사라지는 기분이 들까?” 만약 그렇다면, 그건 말해야 할 타이밍입니다. 말은 존재의 도구입니다. 내가 주저할수록, 나의 존재는 흐려집니다. 그렇기에 타인의 리듬에 맞추기보다 나의 목소리를 인식하고, 그 안에서 안정감을 찾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직장 안에는 수많은 언어 스타일이 존재합니다. 때로는 유창하고 멋진 언변보다, 조용하지만 단단한 리듬이 더 오래 기억됩니다. 말의 힘은 소리의 크기가 아니라 진심이 정돈된 구조에 있습니다. ‘말 잘하는 사람’이 되지 않아도, 나는 충분히 나만의 언어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 시작은 ‘위축’이라는 감정에서 한 발짝 물러서서, 나의 리듬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자기표현의 속도를 믿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