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함에 눌리는 감정의 시작 팀장이 아닌 인간으로서 대하는 법
직함에 눌리는 감정의 시작
직장이라는 구조는 위계로 이루어진다. 그 구조 안에서 사람은 직함으로 먼저 소개되고 직함으로 먼저 평가된다. 나는 늘 팀장이라는 사람 앞에서 말끝을 조심했고 표정을 신경 썼으며 일 처리를 지나치게 꼼꼼히 점검했다 실수를 하면 안 되고 말실수도 해선 안 된다는 압박 속에서 하루하루가 마치 시험장 같았다. 처음에는 존중이었다 그가 가진 경력과 능력을 인정했고 조직 내 책임을 이해했다 그러나 그 존중은 곧 경계로 변했다 어느 날부터 그는 사람을 보지 않고 성과만 보기 시작했다 피드백은 칭찬보다 지적이 많았고 지시는 대화가 아니라 통보였다 그의 표정 하나 말투 하나에 내 하루의 기분이 좌우되기 위해 시작했다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을 인간이 아니라 그 사람의 판단에 따라 움직이는 기계처럼 느끼게 되었다 위계 스트레스는 단순히 상사와의 갈등이 아니다 그것은 내 감정의 우선순위가 타인에게 넘어가 버린 상태다 그 순간부터 나는 그 사람의 감정 온도에 따라 움직이는 감정 하청 노동자가 된다
하루 스무 시간쯤 감정이 타인의 손에 맡겨진 채로 살다 보니 내 안의 자존감은 조금씩 마모되었다. 아침마다 마음의 연료 탱크가 비어 있었고 동료와 농담한 줄 주고받는 것도 사치가 되었다. 나는 언제부터 내 인생의 운전대를 내려놓았을까 질문했지만 쉽게 나오지 않았다 긴 시간 길든 두려움은 나를 협소한 감정의 케이지 안에 가두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케이지를 인식한 순간이 탈출의 첫 증거였다 마침내 몸이 신호를 보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이명이 들리고 손목이 차게 식어 있었다. 병원에 가니 과도한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의사는 규칙적인 식사와 스트레스 회피를 조언했지만 나는 웃음만 나왔다 나를 긴장하게 하는 대상이 팀장인데 회피가 가능할 리 없었다. 이대로는 내가 무너진다. 그가 아니라 내가 먼저 사라진다 이 사실이 두려움보다 더 두려운 공포로 다가왔다. 그래서 스스로 첫 약속을 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 자신을 손상하지 않겠다고 나는 내 편이 되기로 결심했다.
직함 너머의 사람으로 보기
나는 이 상태에서 빠져나오기로 결심했다 그를 팀장이 아니라 인간으로 보기로 했다. 그도 나처럼 실수할 수 있고 자기감정에 휘둘리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자꾸 떠올렸다 그 사람의 냉담한 피드백 뒤에 감정적으로 불안정한 언어가 섞여 있다는 것을 인식한 순간 내가 너무 과도하게 두려워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첫 번째 훈련은 그의 말에 반응하지 않고 내 감정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예전에는 그가 불편한 말을 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내 잘못을 찾고 스스로를 압박했다 이제는 다르게 했다 나는 먼저 내 안의 감정을 확인했다 방금 기분이 상했구나! 방금 그 말은 나를 위축시켰구나 이 감정을 분리해서 바라보자 한 말과 내가 느낀 감정은 같지 않다 이 훈련은 단순해 보이지만 반복될수록 위계에서 생긴 긴장을 풀어주는 효과가 있다 두 번째는 거리 두기다 그는 나의 상사지만 나의 내면까지 컨트롤할 수는 없다 업무에 필요한 만큼만 대화하고 감정적 개입은 줄였다. 상사의 인간적인 약점을 볼 수 있게 되면 신화처럼 느껴졌던 존재가 현실로 작아진다. 그 순간 위계는 조금씩 힘을 잃는다. 공격성 피드백을 듣는 순간 눈을 깜빡이고 호흡을 세 번 세는 연습이었다 뇌가 반격 양식으로 들어가기 전에 몸의 긴장을 풀어주면 언어의 흡수가 훨씬 약해진다. 그가 말끝을 높여도 나는 속으로 숫자를 세며 내 뇌를 일시 정지시켰다 그렇게 한 주 두 주가 지나자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맞받아치지 않아도 나의 침착함이 상대의 감정을 비치는 거울이 된 셈이다
그의 지적 중 일부는 업무 개선을 위한 것이었다 나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귀에 거칠게 들어왔다. 그래서 나는 그의 문장을 내 언어로 번역해 마음속에서 살짝 웃긴 표현으로 바꿨다. 예를 들어 그의 차가운 말투를 조금 삐딱한 스티커를 붙이는 느낌으로 생각하며 자체 음 소거했다 언어가 주는 상처는 뉘앙스에서 발생하니 뉘앙스를 내가 재해석하면 상처의 강도는 반으로 줄었다
위계에서 감정 지키는 실전 루틴
물론 상사의 말 한마디에 여전히 감정이 흔들릴 때가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럴수록 감정을 쓰지 않고 정리한다. 업무 외 대화는 최소화하고 보고서는 짧고 명료하게 작성하며 메시지는 회신 중심으로 처리한다. 불필요한 친밀감도 피한다 가장 중요한 건 내 감정의 거리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상사의 기대를 충족시키려는 과도한 압박을 내려놓기 위해 나는 일일 마감 체크리스트를 만들었다. 오늘의 업무 목표는 무엇이었는지 그 목표는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범위였는지 따져본다. 중요한 것은 상사의 평가가 아니라 나의 기준과 원칙이다. 그렇게 자기 기준으로 업무를 정리하면 상사의 피드백도 덜 위협적으로 느껴진다고 평가가 아닌 협업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순간 감정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 나를 증명하려는 욕구에서 벗어나 평정심을 유지하는 데 집중하면 상사와의 감정 거리는 한층 멀어진다. 그와 나는 같은 조직에 있지만 각자 다른 삶을 사는 독립된 개인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핵심이다
감정의 주도권을 되찾는다는 것
위계 스트레스에서 벗어난다는 건 결국 감정의 중심을 다시 나에게 돌리는 것이다. 조직에서 상사는 바뀌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회사의 구조도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그 안에서 느끼는 감정의 방식은 훈련을 통해 바꿀 수 있다 나는 더 이상 그 사람의 기분에 내 하루를 맡기지 않는다. 상사의 냉정함은 그 사람의 문제일 뿐 나의 가치가 아니다 팀장이라는 직함을 벗기고 보면 그도 나처럼 실수하고 긴장하고 피로한 하루를 살아내는 사람이다. 내가 그를 인간으로 볼 수 있게 되자 나도 인간으로 남을 수 있었다. 감정을 무시하지 않고 감정을 빼앗기지도 않는 상태 그것이 위계 속에서 나를 지키는 힘이다. 인간관계에서 감정은 교환되는 것이 아니라 보호되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혹시 위계에 눌려 감정을 꾹꾹 눌러 담고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감정을 내 편으로 다시 데려오자 그리고 기억하자 우리는 팀장이 아닌 인간과 일하고 있고 나 또한 조직 안에서 감정을 가진 존재임을.